난 밀덕후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밀리터리 매니아의 범주에 속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렇다고 얼룩무늬 밀리터리룩을 즐겨입거나 모델건을 수집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게임이나 영화같은 걸 좋아하는 정도. 어쨋든 갑자기 삘이 꽂혀서 그동안 내가 본 전쟁영화 중 가장 재미있었던 녀석 3편을 골라보기로 했다.
크림슨 타이드 (Crimson Tide) / 1995년 / 감독 : 토니 스콧
▲ 포스터부터 핏빛 일색
나머지 2편의 영화가 죄다 지상전, 즉 "땅깨"의 싸움이 배경이라면 이 영화는 수중전, 다시 말해 잠수함끼리의 싸움이 배경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크림슨 타이드(진홍색 조류)"는 해석 그대로 바다가 모두 피로 물들어버릴 정도로 급박한 상황을 의미하는 미국 군사용어이며, 영화상에서는 자칫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지도 모를 긴박한 상황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 격렬한 소용돌이 한가운에 있는 잠수함 안에서의 함장과 부함장 사이의 암투를 동시에 나타낸다.
이제 나이 80을 눈앞에 두었지만 카리스마 하나는 "킹왕짱"인 "진 핵크만"이 램지 함장역으로, "크림슨 타이드", "맨 온 파이어", "데자뷰" 등 히트친 영화수에 비해 이름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덴젤 워싱턴"이 부함장 헌터역으로 출연해 제대로 된 카리스마 대결을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 핵무기를 발사하려 한다는 사실에 핵무기 발사명령을 받은 핵잠수함 "알라바마"호의 램지 함장. 차근차근 핵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던 도중, 중요한 전문을 수신중이던 통신기가 고장이 나면서 뜻이 모호한 수신문만이 남게 된다.

▲ 두사람의 카리스마 대결이 볼만하다
핵무기 발사를 계속 진행하라는 건지 중지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부함장은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반드시 전문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부함장을 실전경험없는 하찮은 흑인 정도로만 생각하는 램지 함장은 의미없는 전문이라며 발사를 속행하려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의 두 사람이 충돌하면서 함장은 부함장에 의해 직위해제 당하기에 이르고, 운나쁘게도 알라바마 호는 함장의 공백 탓인지 적함수함의 어뢰에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
비록 다른 영화들과 같은 화려한 총격전은 없지만, 수심 수백 수천미터 아래 좁고 밀폐된 잠수함이라는 특수한 배경속에서 펼쳐지는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는 상당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극 중후반에 펼쳐지는 잠수함끼리의 어뢰전이 영화의 백미.
블랙 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 2002년 / 감독 : 리들리 스콧
▲ 정작 포스터에 나온 헬기는 다른 기종 -_-;;
이 영화의 제목에도 들어있는 "블랙 호크"는 미국 헬기(UH-60)의 별칭으로, 전투지역에 신속하게 무장병력을 수송하는 역할을 한다. 제목만 보면 한마디로 이녀석이 격추를 당해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영화란걸 알 수 있다. 실제로도 이 영화의 스토리를 보자면 소말리아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블랙호크 헬기가 격추되면서,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전우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미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대충 이런 환경이랄까 -_-;;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접하게 된 계기는 바로 "군대"였다.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근무했던 28사단 신교대에서는 3~4주차쯤 사기진작을 위해 영화를 한편 보여주는데, 그게 항상 "블랙 호크 다운"이었다. 나랑 17개월 차이였던 고참도 그랬고, 나랑 21개월 차이났던 부사수도 그랬던걸 보면...부대 해체될때까지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_-;; (사기진작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군생활 20개월 넘게 남은 놈들한테 이런거 보여준다고 해서 "씨바 군생활 존나 열심히 해야지"할 놈이 과연 있을지는 의문이다...있으면 말뚝 박아야지 뭐)

▲ 가운데 이완 맥그리거. 비중 존내 없음 -_-;;
출연진도 화려하다. 주연으로는 "진주만"으로 유명해진 "조쉬 하트넷"이 유능하고 신뢰감있는 분대장으로 출연하고, 조연으로도 다른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어리버리한 병사역의 "이완 맥그리거"도 보이고, 수송차량을 지휘하는 중령으로
"톰 시즈모어", 딥 임택드와 아마게돈에서 각각 출연했던 "론 엘다드", "윌리엄 파츠너" 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인 "24"에서 대통령 경호실장, "트랜스포머"에서 육군 대령으로 출연하셨던 "글렌 모슈어" 등등... (하여튼 이놈의
헐리웃 영화는 보다보면 중뷁이 수두룩...) 재미있는 것은 지금은 최고의 헐리웃 배우 중 하나로 성장한 "올랜도 블룸"이 단역으로 출연한다는 사실! 반지의 제왕이 2002년
개봉했으니까 아직 뜨기 전이었나 보다. 단역인만큼 영화 초반에 어이없게 헬기에서 떨어져 꼴까닥 -_-;;
이 영화의 주제는 한 단어로 요약이 가능하다. "전우애".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속에서 부상당한 전우를 구한다거나, 격추당한 헬기의 승무원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적진속으로 달려들어가야 하는 상황, 적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전우들을 위해 적진의 한가운데로 수송차량을 끌고 들어가야하는 상황 등등... 얼핏 보면 죽고 죽이고 쏘고 터지고 부수기만 하는 영화로만 보이기가 쉽지만, 뜨거운 전우애 앞에 녹아내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보고 있자면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눈물을 흘린다면, 밀덕후이거나...군의식이 투철하신 분이리라) 어쨋든 밀덕후라면 필히 챙겨봐야 할 수작.
밴드 오브 브라더스 (Band of Brothers) / 2001 / 감독 : 톰 행크스
▲ 가운데가 윈터스랑 닉슨이겠지?
지금까지 나온 전쟁영화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는 아니고 다큐멘터리 드라마(우리나라로 치면 미니시리즈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듯. 그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공동제작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찍고 삘받은 톰행크스가 남은 소품 버리기 아까워서 찍었다는 후문(?).
제 2차 세계대전시 실존했던 101공수사단 506연대 2대대 E중대(Easy중대)의 대원들이 주인공인데, 스토리 자체도 생존인물들의 증언(실제로 매화 오프닝에 실제 인물들의 독백장면이 삽입되어 있다)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재현되었고 캐스팅 단계부터 최대한 닮은 인물로 캐스팅을 했다하니, 사실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총상이나 폭탄 투하로 인한 각종(?) 부상도 리얼하게 표현되는데, 그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다. 목이나 얼굴의 총상은 물론 다리 절단, 상/하반신 분리(?) 등도 엄청 사실적으로 나온 탓에 끔찍한 거 마다하지 않는
나에게도 좀 충격적일 정도.)

▲ 바로 이분!!
재미있는 것은 극 초반 중대장인 "소블" 대위역으로 "데이비드 쉼머(David L. Schwimmer)"가 출연한다는 사실! 누군지 모른다고? 유명한 미국 시트콤인 "프렌즈"에서 "로스"역으로 출연했던 어리버리하게 생긴 사람을 기억하는가!! 프렌즈에서도 허우대만 멀쩡하지 쫌팽이에다 소심남으로 나오지만, 밴드 오브 브라더스마저도 훈련할때는 어떻게든 중대원들 꼬투리 잡아서 괴롭힐 궁리만 하는 주제에 실전에만 나가면 어리버리까는 무능한 장교로 출연한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꼬봉이었던 윈터스에게 경례안한다고 갈굼까지 먹는다는...불쌍한 소블 -_-;;)
그렇다고 사실성만 뛰어난 것은 절대 아니다.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온 이지 중대원들이 전쟁을 겪으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 극한 상황에서 서로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전우애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노르망디 상륙 후방지원 작전, 마켓 가든 작전, 바스토뉴 전투, 파리 점령, 베를린 입성, 독수리 둥지 점령과 같은 전투를 거치면서, 딕 윈터스가 소대장(소위)부터 시작해 대대장(소령)에 이르기까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이지 중대원들의 모습을 함께 따라다니다 보면, 10시간이라는 시간은 눈깜짝할 새에 지나갈 것이다.

▲ 완소남 윈터스와 중대원들
더욱더 재미있는 것은 동일한 스탭들이 2009년 방영을 목표로 현재 후속작을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 이번엔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미 제 1해병대를 다룬다고 하는데, 정말 기대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스피어스 대위 좀 다시 출연시켜 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