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구나 이같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릴적 부모님 손을 꼭잡고 무서운 영화의 한장면을 이불속에서 본 적이. 무언가 깜짝 놀랄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데도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적이. 보고나서는 후회하고 며칠동안 혼자서 어두운 화장실도 가지 못했던 적이 말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난 호러나 공포영화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원체 소심하고 겁이 많은지라... 하지만 공포영화란게 다 그렇지 않은가. 무서운줄 알면서, 끔찍한 장면에 인상쓰게 될 줄 알면서, 갑작스런 등장에 화들짝 놀라게 될 줄 알면서도 자꾸 보게 되는 것이 공포영화의 매력인 것이다.

가뜩이나 겨울이니 크리스마스니 해서 가뜩이나 옆구리가 시린 나의 간담을 서늘케 한 오늘의 작품, "제 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에 빛나는, "초대되는 순간, 당신의 심장은 얼어붙는다", 바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다.

극히 현실적인, 그래서 더 무서운 공포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검은 집". 제목만 봐서는 현실적인 느낌이 그다지 풍기지 않는다. 뭐 대충 "시커멓게 생긴 집에 예전에 살던 귀신이 붙어있는데, 이사온 사람들이 이런저런 풍파를 겪으면서 귀신에 얽힌 비밀과 사연을 파헤치게 되고, 결국은 이래저래 잘살게 된다......" 이런 시나리오가 떠오를법한 제목이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딴판이다. 등장인물 하나의 직업부터 성격, 심리묘사를 비롯한 모든 설정이 지극히 현실적인 냄새를 풍긴다. "엑소시스트"와 같은 영화는 무섭기는 하지만 적어도 실생활에 적용(?)될만한 류의 공포는 아니다. 하지만 "검은 집"을 보고나면 엘리베이터와 같은 평범한 공간조차 공포의 대상으로 보일법 하다.

"검은 집"의 현실감 넘치는 공포는 극중 몇가지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마침내 검은집에 몰래 침입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살아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신지, 마지막 회사에서 엘리베이터와 계단에서 벌이는 치열한 두뇌싸움과 범인과의 사투 장면은 글만 읽고 있어도 그 공포감과 긴박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세세히 묘사되어 있다.

특히 열쇠를 훔쳐 신지를 죽이기 위해 집에 침입한 범인의 존재를 알아챈 장면, 밖의 공중전화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중얼거리는 범인의 음성을 듣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우연히 죽음을 피한 주인공의 겁먹은 심리와 명백한 살의가 느껴지는 범인의 섬뜩한 목소리를 생생히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간의 탈을 쓴 괴물, "사이코패스"
귀신이나 악령 등 초현실적인 "싸이코패스"라는 심리학적 요소를 다룸으로써 작품의 현실성은 한층 더해진다. "싸이코패스"라는 타인의 아픔, 고통 따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실존(實存)하는 존재이다. 실제로 연쇄살인마 중 상당수가 싸이코패스와 유사한 특성을 보였다고 한다.

"검은 집"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프로이트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화제가 되었던 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이 연상된다. "싸이코패스"라는 심리학적인 병을 소재로 삼은 탓도 있지만, 미요시라는 심리학자의 등장, 심리치료사인 여자친구, 문집에 실린 글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부분 등에서 프로이트의 심리분석학을 바탕으로 씌인 소설 "살인의 해석"이 연상되는 것이다.

은 듯 다른 듯, 영화 [검은 집]
이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있으니, 바로 황정민 주연의 동명영화 [검은 집]이다. 신지 역에 황정민, 고모다 역에 강신일, 사치코역에 유선이 캐스팅되어 열연을 펼쳤는데, 개인적으로 원작에서 느꼈던 공포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나름 만족스러운 구성이었다.

영화의 큰 틀은 원작과 동일하다. 보험회사 직원인 남자 주인공과 심리치료사(의사)인 여자친구, 보험금을 원하는 부부와 자살한 아들 등 인물 구성이나 스토리 진행은 모두 동일하다.

물론 사소한 부분에서는 원작과 다른 부분이 눈에 띈다. 원작에선 다조 꼬질꼬질(?)하게 묘사되었던 사치코가 영화에선 엄청 예쁘게 나왔다던가(물론 배우가 이뻐서이지만), 마지막 사투(?)의 장소가 회사가 아닌 병원이라던가, 원작에서는 없었던 미요시가 범인에게 당하는 장면이 있다던가 하는 것들이 차이점이다.

원작과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결말이다. 원작에서 마지막 한줄,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것을 영화에서는 다르게 해석해서 한층 더 여운을 남기는 쪽으로 결말을 지었다(소설과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영화쪽 결말이 더 맘에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설이 상상하는 재미를 준다면, 영화는 역시 영상미가 있기 때문에 흡입력이 더 강하다. 특히 "검은 집"에서는 배우들의 열연 덕도 있지만 황정민이 자살한 아이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 마침내 살육의 현장을 발견하는 장면, 토막난 시체를 발견하는 순간의 섬뜩한 화면전개와 팝업(!!)하는 듯한 화면전환은 불끄고 볼륨높여서 본다면 멀쩡한 사람마저 심장마비를 일으킬만큼 충격적이다(죽을뻔 했음 -_-;;).

난 원래 책을 검색을 통해 찾기보다는 읽은 책의 표지에 실린 광고,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같은 출판사의 다른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앞으로 일본 호러문학의 거장이라면 기시 유스케의 다른 작품들을 접해볼 작정이다. 같이 해보실라우?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http://kaka.pe.kr/trackback/95

  1. Subject : 검은집 (Black house, 2007)

    Tracked from 1004ant의 한일영화 이야기 2007/12/21 09:18 del.

    [18금] 참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그동안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극장간판을 내릴 때까지 그 영화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소신이랄 것이 작동하여서 .. 개봉 중인 영화에 대한 포스팅은 삼가하는 편이였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첫째, 마음에 드는 영화는 다시금 본 후 포스팅할 때의 즐거움.. 둘째, 마음에 들지 않던 영화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선택한 잘못을 알기 때문.. 셋째, 표현력이 부족한 나에게 스틸컷을..

Comments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