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멋진 세종대왕님이!! 【뿌리깊은 나무】

2007/09/1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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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한 표지

요즘 쓸데없이 자기계발 서적을 지나치게 많이 읽어서 그런지...머리가 굳은 것 같아서 오랜만에 소설이나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귀가 얇은지라 남들이 많이 읽은 책 중에 뭔가 흥미있을 만한 책이 없을까하고 찾던 중, YES24 "2006 네티즌 추천도서"를 보다가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바로 이정명 작가의 "뿌리깊은 나무". 다소 구수한(?) 냄새의 제목에다 들어본 적 없는 작가였기에 다소 의구심은 들었으나... 뭐 남들이 재밌다니까 -_-;;

"한글 속에 숨겨둔 대왕 세종의 비밀코드!"나, "이렇게 멋진, 아름다운, 뿌듯한 역사는 없었다"와 같은 미사여구에 혹한 것도 있었지만, 근래 이렇듯 꽉찬 느낌의 생각의 여운을 남기는 책을 읽기는 오랜만이었다.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 하지만 내용은 충실

쓸데없이 화려하지 않은 표지, 종이의 질과 제본의 수준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중간중간 나오는 삽화의 영향 탓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나 권당 9,500원이라는 비교적 부담스러운 가격은 불만스럽긴 했지만.(2권이면 19000원이다 -_-;;) 하지만 읽고나면 어느덧 그러한 불만은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게다가 각 권에 부록으로 "세종대왕 연보"와 "훈민정음 해례"를 수록해,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놓았다는 점이 맘에 든다.

거미줄처럼 얽힌 복선, 치밀한 전개

소설은 1443년, 즉 세종이 즉위한지 25년이 되던 해의 궁궐을 배경으로 한다. 선선한 가을날, 궁궐의 한 우물 속에서 젊은 집현적 학사의 시체가 발견된다. 궁궐에서도 지위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말단 겸사복(궁궐 수비대원)인 채윤은 사자(死者)가 남긴 미스터리한 단서들을 실마리 삼아 사건해결에 뛰어든다. 어린 나이에 지위는 낮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지만 명석한 두뇌와 집요한 끈기를 무기삼아 채윤은 계속되는 죽음의 실마리들을 하나하나 엮어가며, 사건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거대한 음모!

흔한 숫자놀음인 마방진인 줄만 알았던 그림이 훈민정음 창제의 한 조각임이 밝혀지는 과정, 살해된 집현전 학사와 살인현장이 나타낸 의미와 오행설의 관계.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 사이의 지극히 미묘한 대립구도에 대한 묘사, 지극히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거미줄처럼 얽히고 섥힌 배경 설정, 전개와 복선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소설에 빠져들게 만든다. 뒤로 가면 갈수록 급물살을 탄 것 마냥 급속도로 빨라지는 전개 또한 몰입을 돕는다.

개성넘치는 등장인물, 반가운 특별 출연

"뿌리깊은 나무"가 재미있었던 것은 등장인물 모두가 개성넘칠 뿐만 아니라, 모두 나름의 특별한 역할이 있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반문할 이도 있을지 모르나, 나의 이 호들갑(?)의 원인은 작품의 완성도가 그만큼이나 높음에 있다 하겠다. 거기다가 위인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영실과 박연의 까메오 등장까지!

뛰어난 미색을 지녔으나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궁녀 소이. 모두가 기피하는 백정이나 다름없는 일을 하면서도 "해부"에 있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지닌 가리온. 부끄러운 과거를 지닌, 뛰어난 무예와 지극한 충심을 모두 지닌 범인"형" 무휼. 분서고를 담당하는 걷지 못하는 윤서후. 모두가 복선의 한 축을 끼고 있으면서도 고유의 개성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겉돌기만 하는 듯하는 인물들 모두가 뒤로 가면서 모두 사건의 중심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때의 그 놀라움과 쾌감이란 읽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세종대왕님은 역시 최고!!

주인공은 채윤이지만 말마따나 이 소설의 키워드는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이다. 우리가 당연한 듯이 쓰는 우리의 말 한글. 한글날이 왜 한글날인지, 세종대왕님이 왜 한글을 만들었는지 역사적 배경의 티끌조차 알지 못한채 바삐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이라면 대다수에게 억지로 쥐여주고 싶을 정도로 가슴뭉클한 내용이 이 책안에 담겨 있다.

중국으로부터 왕권을 인정받고, 해마다 조공을 바치는 등 실로 속국 이라 할 만큼 중국에 얽매여 살았던 과거. 이렇듯 비참한 과거를 청산하고 진정한 한 나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종대왕님!! "고군통서"의 내용을 읽고 있자면 흡사 제갈공명의 "출사표"가 떠오를 만큼 그 슬픔과 분노, 의지와 기개가 느껴질 것이다.

이 소설에서 김진명"식"의 민족주의 소설이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듯 싶다. 왜냐하면 맹목적으로 중국에 얽매여 조선을 져버리려 하는 극중 인물들의 모습. 흡사 김진명 소설에 나오는, 미국에 붙어먹어 조국을 부정하는 매국노들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등에 엎고 조국을 져버리려 하는 내부의 적. 고군통서를 탈취하기 위해 침입한 자객들. 이러한 내부의 적에 대해 분연히 칼을 빼어든 세종대왕의 모습에서 "비장함"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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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합니다. 한글 잘 쓰고 있어요.


비록 팩션(Faction)이지만, 팩트(Fact)였으면 가공의 역사. 비록 허구인 소설이지만 진정으로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한글,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를 창제하셨던 세종대왕님의 의지를 빙산의 일각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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