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시행에 즈음하여...

2007/09/07 03:32
인터넷 서점의 무분별한(?) 할인율 적용, 철퇴를 맞다.

bestiz 게스트 천국에서 놀다가 충격적인 기사를 봤어.

기사 원문보기

몰라. "신간"으로 분류되는 기간을 6개월 늘리고, 할인율을 10%로 제한하긴 했어도, 어쨋든 "신간"에 국한된 이야기려니 할지 몰라. 하지만 원래 도서 매출이라는게 신간에서 대부분이 나오는 거잖아? 남보다 먼저, 앞서서 새로 나온 책을 읽는 재미란게 있잖아? 시리즈물의 다음편을 손꼽아 기다리는 두근거림이란게 있잖아? 몇년전부터 오프라인 서점의 점유율이 시간이 지날수록 급락한다는 얘기도 알고 있었고, 이러한 현상을 제제하기 위한 법안을 제정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한때는 YES24등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100%에 육박하는 반대의견이 나왔다는 것 따윈 다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시행될 줄은 몰랐어.

기사 내용에 따르면 온라인 서점들도 나름대로 온라인 서점만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독자적인 메리트를 창조하려고 노력하는 모양이지만, 결국 온라인 서점의 최대 장점인 "싼 가격"을 포기하고선, 망할 수 밖에 없을거야. 요즘 인터넷 서점들은 책뿐만이 아니라 DVD, 음반, 화장품 등등 잡다구리한 걸 다 팔던데, 이런 쪽으로 살아남으려 하는건가? 그럼 대형 쇼핑몰이랑 뭐가 틀려?

거품부터 빼라.

도서정가제가 뭐냐? 결국 에누리 없이 도서가 가진 정상적인 가치만큼의 돈을 받겠다는 거 아냐? 다시 말해 인터넷 서점들의 무분별한 할인율 적용 등으로 인해 생긴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간의 격차를 줄여보겠다는 거겠지. 그런데 말이야, 애초부터 그 도서라는 놈의 정가가 거품투성이라는 거 알아? 내가 책을 "보는" 것보다 "소장"하는 것에 가치를 더 두기 때문에 빌려보기다는 주로 사서 보는 타입이라서, 쓸데없이 소비욕구만 강해서 책을 죄다 사서 보는 타입이거든. 그런데 지금까지 수백권의 책을 사오면서 느낀건, 이놈의 책값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단 말이야. 몇가지만 추려볼게.

첫째, 왜 쓸데없이 죄다 양장본이야? 양장이 뭔지 모른다구? 책 앞뒤 표지가 존내 두꺼운거라고 생각하면 돼. 딱딱한거 있잖어 왜. 근데 이게 다 돈이다? 책을 제본하는 데에도 다 돈이 들어가잖아. 그런데 요샌 별 씨답잖은 책들도 죄다 양장본으로 만들어서 쓸데없이 가격을 올리더라고. 물론 양장본이 보존성도 더 높고 구겨지거나 할 일이 없으니까 좋다는 사람도 있겠지. 그럼 적어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줘야 하는거 아냐? 애초에 양장본이랑 일반 제본 버젼 2개를 발간해서 독자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 해 주던가, 수지가 안맞다거나 제반공정 때문에 어렵다는 건 알겠어. 내가 책을 제본하는 방식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해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긴 하는데, 확실히 쓸데없이 양장본으로 발간해서 코묻은 돈 조금이나마 더 먹을려고 하는 거 보면 열받는다구.

둘째, 쓸데없는 분책. 분책이 뭔지 알지? 쉽게 말해 1권으로 되는 걸 2권으로 만들고, 3권이면 되는걸 5권으로 만드는 거야. 내용은 동일하지만 일단 권수가 늘어나니까 당연히 비싸지는 거야. 어차피 1권을 사는 독자면 어쩔 수 없이 마지막권까지 사게 되니까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강매 행위를 하는거나 다름없다구. 왜 1권이면 되는 내용이 2~3권이 되겠어? 레포트 써본 사람은 알꺼야. 줄간격 이빠이 늘리고, 글자크기 존나 크게 하면 돼. 상하좌우 여백 존내 주고, 쪽마다 쓸데없이 큰 쪽번호나 머리말 & 꼬리말을 넣으면 돼.

지금까지 본 책 중에 이렇게 쓸데없는 분책의 절정을 보인 건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였어. 해리포터는 일단 페이지당 글자수부터 딸리는데다가 위엔 쓸데없이 해당챕터명을 널찍하니 써주고 이상한 별그림까지 넣어놨어. 상하여백이 장난 아냐. 이런 해리포터 시리즈의 횡포(?)는 "불사조 기사단"에서 절정에 달했지. 책 본 사람들은 알꺼야. 내용 자체는 그리 길어지지도 않은 주제에 5권으로 만들어 버린거야! 불사조 기사단 처음에 발간됐을때 사람들 장난 아니였다고. 안 살수도 없고, 사긴 사야 되는데 5권이니까 가격부담이 장난 아니였지.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건 가격까지 비싸다는 거야. 한권당 8,500원. 5권 사면 얼마야? 42,500원이라고. 무슨 아동소설 시리즈 한편이 4만원이 넘냐?

셋째, 불필요한 고급용지 사용으로 단가좀 올리지 마. 이건 좀 논란의 여지가 있지 싶은데, 내가 말하는건 빳빳해서 내구성 좋은 책을 탓하려는게 아냐. 최고급지라고 해서 번들거리는 종이 있잖아. 형광등 밑에서 보면 빛이 반사되서 읽기 불편한 책들. 너무 싸구려 종이를 사용한 나머지 쉽게 찢어진다거나 너무 얇아 반대편 내용이 비쳐보일 정도도 문제지만, 쓸데없이 너무 두껍거나 번들거리는 이름만 고급지인, 책에는 어울리지 않는 비싼 종이 사용한 책들 보면 돈이 아깝다고.

NT Novel이라고, 주로 일본 판타지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해서 국내에 출간하는 곳이 있어. 장르 특성상 그리 광범위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게 아니지만, 작은 사이즈, 충실한 내용과 번역, 구입욕을 유발하는 일러스트 삽입 등으로 가격을 낮추는 정책이야. 이런걸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보거든.

(여담인데 최근에 산 책 중 전반적으로 가장 맘에 든 책은 "뿌리깊은 나무"였어.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내용은 잘 모르는데 재밌다고 하더라고. 일단 표지부터 깔끔하고, 딱 잡으면 책이 두툼하다기보다 튼실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제본도 잘 되어 있고, 쓸데없는 종이 낭비도 안한것 같애. 다만 줄간격이랑 글자크기를 좀 줄여서 1권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럼 어른들 보시기 불편하니까. 뭐 그렇다고. 나 밀리언하우스 알바 아니셈.)

그럼 오프라인 서점도 뭔가 바뀌어야 하는거 아냐?

백번 양보해서 도서정가제 에누리 없이 수용한다고 치자고. 온라인 서점은 자신들이 가졌던 장점,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손쉽게 주문만 하면 택배로 보내준다는 점(요샌 배송료도 무료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수익으로 인한 책값의 할인, 온라인 매장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각종 이벤트와 혜택(쿠폰 제도 같은거), 이런 것들 다 희생하는데 오프라인은 뭔가 바뀌는게 있는거야?

가끔 진짜 보고 싶은 책이 있는데 기다리기 싫거나 한권만 주문하기 뭐해서 시내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경우가 빈번하거든. 수도권에서 날린다는 영풍이나 교보같은 곳도 많이 가보고 널려있는 동네 서점도 가봤는데,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어. 어쩌면 오프라인 매장이 간과하기 쉬운 맹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단골" 고객의 유치를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거야. 온라인 서점을 봐. 비회원으로 주문하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마일리지도 있고 구매내역 조회나 배송조회 등의 혜택을 누리려면 회원가입을 하는게 보통이야. 등급제 같은 것도 도입해서 많이 구입하면 등급을 올려 일반 고객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기도 하잖아. 그런데 오프라인 매장은 그런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대형 서점의 경우에는 회원제도가 있어서 카드도 만들어주고 마일리지 제도도 있긴 하지. 하지만 그 혜택에 있어서도 온라인에 비해 양과 질 모두 떨어지는데다가, 애초부터 그런걸 쓰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거야.

물론 오프라인 서점만이 가지는 장점도 있다는 걸 알아. 어린 시절 더운 여름날 시원한 서점에 들어가 주인 아줌마 몰래 만화책을 뜯어봤던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꼭 그런 추억이 없다 하더라도 서점에서 책을 사본 사람이라면 알거야. 서점 한켠에 서서 이런저런 책을 조금씩 읽어보면서 구입할 책을 고르는 재미라는 건 안해보면 모르는 거거든. 온라인에서는 구할 수 없는 오래된 책이나 귀한 책을 돌아다니며 찾아보는 것도 마찬가지.

하지만 "도서정가제"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서점들에게만 채찍을 가할게 아니라, 애초에 오프라인 서점들이 온라인 서점과의 간극이랄까,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얘기야. 어느면으로 보나 메리트가 훨씬 많은 건 온라인 서점인데 선택의 여지조차 주지 않은채 독자들로 하여금 이걸 포기하게 만드는 건 강제 매매랑 뭐가 달라?

어쨋든 종이와 활자를 사랑하는 독자들을 등쳐먹지는 말아주길.(반말이라 죄송합니다. 혼잣말같이 쓰다보니 -_-;;)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http://kaka.pe.kr/trackback/63

  1. Subject : 한국의 책 값이 싸다? 해리포터는?

    Tracked from 언제나 공사중! 2007/11/15 18:10 del.

    도서정가제가 되고나서 책값이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근데, 저는 최근 책을 산적이 없어서 정말 올랐는지는 그렇게 체감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에 책이 손에 잘 안잡혀서 이것저것 어떤걸 읽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간만에 책을 지를까?라고 여기저기 뒤져보고 있는데, 메인 베너에 있는 해리포터의 마지막편 광고를 보고 한번 읽어보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격을 보는 순간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책 값 싼거 맞어? 비교적 싼 축..

Comments

  1. 씨큐 2007/09/07 16:26

    저도 항상 불만이었어요! 전 그냥 재생용지로 만든 페이퍼백이 책도 가볍고, 부담 없어서 참 좋더라고요.
    좋은 글 잘보고 가요. '-'

    perm. |  mod/del. |  reply.
    • 카카달려 2007/09/07 19:19

      그렇죠. 쓸데없이 책값만 엄청 올려놓고 이제 인터넷 서점의 싼 가격도 강제로 포기하게 만들다니...

  2. ciyne 2007/09/08 01:25

    ㅠ 책값 너무 비싼데 쳇...

    perm. |  mod/del. |  reply.
  3. rince 2007/09/09 19:38

    중고책방이라도 다시 부활좀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답니다. 책이 너무 비싸서리... ㅠㅠ

    perm. |  mod/del. |  reply.
  4. foxer 2007/09/29 20:09

    그럼 오프라인 서점도 뭔가 바뀌어야 하는거 아냐?
    이 문장 초공감입니다

    perm. |  mod/del. |  reply.
    • 카카달려 2007/09/30 17:32

      그렇죠. 오프라인 서점 X발라마들 ㅠ.ㅠ

  5. rekian 2008/11/27 19:12

    읽는 동안 발끈! 하면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1년전 글이라니 ㅠ^ㅠ...

    하지만 이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군요.
    양장본 얘기에서 울컥! 하면서 내려왔습니다.
    허접스레기같은 책들마저 이런 저런 구라타이틀 달고 양장본으로 낚으려드니 ㅡㅡ;
    좋은 글 잘 읽고가요 ^^~

    perm. |  mod/del. |  reply.
    • 카카달려 2008/11/30 04:28

      지난 1년동안 나간 책값이 수십만원입니다...
      아 물론 다 전공서적이에요;;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