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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테란 이윤열"은 죽었다, 하지만......

2008/02/21 23:02, 글쓴이 카카달려
오늘 곰TV MSL 스타리그, 박성균과 이윤열의 8강 경기가 있었다. 지난 시즌 우승자이자 기본기가 탄탄한 플레이가 강점인 선비테란 박성균, 한때 스타계를 평정했던, 올드게이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천재테란 이윤열의 대결은 같은 팀원간의 사제대결이라는 점, 또한 한때 최고라 불렸던 올드테란과 새로이 떠오르는 차세대 테란의 신(新)구(久)대결이라는 점에서드 흥미로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게이머가 이윤열이라는 점도 있지만)

역시 이윤열도 몰락하는 올드일 뿐...
사실 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후배랑 밥먹고 돌아와 TV를 켜보니 이미 1경기는 끝났고 2경기도 패색이 짙어져 있는 상태였다. 최근 신인들이 워낙 기량이 좋고 이윤열도 예전같은 포스가 안나온다고는 해도 너무나도 압도적인 차이로 패하는 것을 보고... '아 오늘 3:0으로 셧다운 당하겠구만...' 하고 생각했다.

3경기도 중반까지는 박성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경기였다. 빠른 앞마당을 선택한 박성균, 2스타를 올리면서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인 이윤열. 박성균이 탱크를 빠른 타이밍이 전진시키면서 이윤열의 앞마당에 타격을 주는 동시에 레이스의 움직임을 봉쇄해버리면서 초반부터 앞서 나갔다. 빠른 앞마당에서 오는 자원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박성균은 다수의 드랍쉽을 쓰면서 서서히 격차를 벌리기 시작하고, 이윽고 배틀크루져로의 빠른 체제전환을 선택한 이윤열의 병력공백기를 놓치지 않고 결정타를, 아니 결정타가 되었어야 할 공격을 감행한다.

보통의 테란이라면 이미 GG를 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이윤열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수의 배틀크루져와 탱크의 절묘한 배치를 통해 쉴새없이 계속되는 박성균의 공격을 막고 막고 또 막아낸다. 무려 10여분동안 계속되는 박성균의 몰아치는 공격을 막고 나니,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이기기 어렵죠~~"를 연발하던 해설진들의 입에서 "이거 어쩌면~",  "모르겠는데요~"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많이 먹었기에, 빨리 먹었기에 그만큼 빨리 떨어지는 박성균의 자원. 그에 비해 이윤열은 기를 쓰고, 사력을 다해, 애처로울 정도로 필사적으로 지켰던 12시 멀티가 건재하다. 마침내 회심의 "SCV + 벌쳐 + 탱크 골리앗 드랍"이 막히자 박성균은 씁쓸한 표정으로 통한의 GG를 친다.

벌써부터 온라인에서는 "올해 최고의 명경기", "임요환 도진광 이후 최고의 역전승"이라면서 설레발을 치는 분위기다. 물론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는 3:1로 4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3경기에서 보여준 이윤열의 의지와 끈기는 충분히 칭찬받을만한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역시 이윤열도 올드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 풍부한 리플레이와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통해 양산되다시피한 신인게이머들의 기량은 이미 올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버렸다.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을 이루고 지금까지도 나름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 최고의 테란인 이윤열의 손 마저도...

"천재테란"은 죽었다.
"천재테란 이윤열"은 이제 죽고 없다. 마린과 베슬만으로 저그들을 농락하던 이윤열, 앞마당만 먹으면 어떤 상대가 무슨 짓을 하든지간에 압도적인 물량으로 적진을 말그대로 쓸고 다니던 이윤열, 신기에 가까운 멀티태스킹으로 말도 안되는 역전승을 일궈내던 그는 이제 없다.

하지만 난 오늘 그에게서 명성이니 이름값에 연연하던 모습이 아닌 절대로 그냥 지지 않겠다는, 3:0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한때 정상에 섰던 사나이로서의 자존심을 보았다. 깔끔하고 센스넘치는 플레이로만 가득차 있던, 언제나 상대를 완벽하게 굴복시키던 그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근성테란 이윤열", "불굴테란 이윤열"을 기대한다. 비록 예전같이 압도적인 물량, 경이로운 컨트롤, 센스넘치는 전략을 통한 소위 "쿨"하고 "깔끔"한 경기는 볼 수 없으리라. 하지만 좀 지저분하더라도, 좀 난장판이더라도, 올드게이머로서의 자존심을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아니 승화시킬 수 있을 그를 기다린다.

언젠가 다시 스타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을 그의 모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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