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꿈"만" 많은 대학생의 스케치북
 
요즘은 초딩이든 중딩이든 할 것 없이 첫눈을 보면 으레 연인을 생각하며 헤벌죽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새하얀 꽃잎이 휘날리는 듯한 눈을 보면서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는 인종이 세상에 둘 있다면, 하나는 갓 제대한 예비역이요 또다른 하나는 현역 군바리일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깟 눈을 치우는 일이 뭐 그렇게 대수냐고 할 지 모르지만, 겨울군번(11월~2월)들 앞에서 그딴 소릴 지껄였다간 어느새 눈속에 파묻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지도. 아닌게 아니라 군인들이 제설작업에 그토록 진저리를 치는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수적열세, 열악한 장비, 텀을 두고 내리는 눈발.

필자가 근무했던 부대는 28사단 사령부였는데, 사단 사령부가 으레 그렇듯 주둔지의 크기에 비해 상주인원이 그리 많질 않았다. 우리 부대의 경우 사령부 내에는 본부대와 통신대대만이 주둔했는데, 넓다넓다 못해 광대하기까진 사령부 주둔지를 2개 부대 합쳐 400명 남짓한 인원이 관리해야만 했다. 400명이 많아 보인다고? 군대는 24시간 근무체제인데다 꼴에 사령부라고 근무지는 허벌나게 많아서 상황근무, 위병소 및 각 초소, 탄약고 등등 경계근무 인원이 교대조 포함 50~60명은 되고, 거기에 출타자(휴가, 외박, 외출 등)가 40~50명(원래 출타자는 부대의 15%였나? 일정 범위 내로 제한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는 부대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인데가가, 밥만 축내는 클로킹 말년병장들을 제외하고 나면...300명도 채 안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군대는 각종 비효율과 비현실의 총본산인 탓에 실제 제설작업을 소집하면 100명이 모일까 말까이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인원을 가지고 고려대학교 캠퍼스만한 땅에 내린 눈을 치운다고 생각해봐라. 물론 인문계 자연계 다 합쳐서. 디진다. 하지만 군인이 무엇인가. 까라면 까야하는게 군인이다. 100명가지고 그 엄청난 눈을 다 치운다. 낮에 오면 낮에 쓸고, 밤에 오면 밤에 쓸고, 자다가도 새벽에 눈이 오면 잠도 못자고 쓸어야 한다. 주말에 눈이 오면 개인정비는 커녕 하루종일 눈만 쓸어야 한다. 하다못해 경계근무 나가서도 쓸어야 한다. 옷무게만 해도 5kg는 될 겨울근무복장을 한 상태로 2시간동안 눈쓸어봐라. 체감온도 영하 20도에서 땀으로 샤워하는 기분이 어떤지를 손쉽게 체험할 수 있다. 그나마 제설도구라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으면 나을까?

눈삽 &

▲ 왼쪽이 눈삽, 오른쪽이 넉가래

군인이 제설작업을 하는데 동원되는 도구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빗자루, 넉가래, 눈삽, 나무판자가 메인이고, 여기에 옵션으로 공병삽과 염화칼슘이 붙는다. 빗자루도 볏짚따위를 끈으로 묶은 촌구석에서나 쓰는 빗자루라든가 방이나 화장실 청소할때나 쓰는 난쟁이 똥짜루같은 녀석은 전혀 도움이 안되고, 플라스틱으로 된 억센 녀석이어야 한다. 눈삽은 그야말로 눈퍼나르는 삽이고, 넉가래는 불도져 앞에 붙은 녀석의 축소판, 나무판자는 눈을 쌓아서 나르는 역할을 한다. 오로지 저런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군바리의 체력으로만 제설작업을 진행하니 어찌 제설작업이 악명을 떨치지 않을 수 있으랴.

눈을 어설프게 쓸다가 시간이 지체되거나, 차량이 지나다니는 바람에 녹은 다음 얼어버린 눈의 경우 빗자루로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공병삽을 동원해 얼음을 깨가면서 제설작업을 진행한다. 염화칼슘은 발열반응을 촉진시켜 눈을 빨리 녹여 흘러버리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이미 언 눈을 녹이기보다는 계단 등의 위험지역에 미리 뿌려두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 극히 드문 경우로 군대에서도 "눈차"라고 해서 일종의 제설차량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고속도로에서 쓰는 그런 쌈빡한 녀석이 아니라서 오히려 바닥의 눈이 압축되어버리는 역효과를 낫는 경우가 많다. 엄청난 무게에 눌려 압축된 눈은 병사들이 일일히 공병삽으로 깨어가며 치워야 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2배로 올라간다. 그야말로 엄청난 폭설이 내리지 않는 이상 볼일은 없겠지만, 병사 입장에서 그리 반길만한 녀석은 아닌 듯.

그리고 제설작업이 군인을 미치게 하는 가장 큰 이유. 내렸다 말았다 내렸다 말았다 하는 하늘의 변덕 되시겠다. 수적 열세건 열악한 장비건 뭐건 간에 다 좋다 이거다. 폭설이든 뭐든 한번에 내려달란 말이다. 군인은 현재 상황이 어찌되었건 간에 눈이 일단 내리면 내리는 족족 치워야 한다. 때문에 한번에 폭설이 내리면 욕지기는 좀 나올지언정 어찌어찌 한번에 치우면 그걸로 상황종료가 된다. 하지만 이놈의 눈이 내려서 치워놓았더니 좀있다가 다시 내리고 또 치웠는데 또 내리면 이것만큼 사람 야마돌게 하는게 없다. 군대가서 꼭 체험해보시길 추천한다 -_-;; 2~3시간동안의 빡센 제설작업을 마치고 막 부대로 복귀해서 쉬고 있는데, 제설작업 집합하라는 방송이 귓구녕을 파고드는 순간의 분노와 절망을...

참고로 말하자면 05년 7월에 입대한 나는 군대에서 2번의 겨울을 지냈다. 하지만 제설작업은 한시즌밖에 치르질 않았다. 찌질한 짬밥이었던 05년 겨울에는 그야말로 개고생했다. 비교적 이른 11월부터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뭔 재수가 옴붙었는지 4월까지 눈이 오더라. 게다가 행정병이었던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도 눈이 온다 싶으면 밖으로 뛰쳐나가 빗자루질을 하기 일쑤였다. 물론 그 탓에 밀린 업무는 야근으로 때워야 했다. 요령없고 짬도 미천한 시기였던 탓에 2~3배로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06년 겨울에는 하늘이 도우셨는지 눈이 온 횟수 자체도 그리 많이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온 것도 내가 휴가나 외박등으로 출타중이거나 당직근무 중(당직근무자는 항상 정위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제설작업을 나가지 않는다)일때였기에 한번도 제설작업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내무실 후임들에게는 눈총을 받아야 했지만 *^^*

이제 일주일뒤면 제대한지 1년이 되건만 아직도 제설작업 이야기가 나오면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때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과연 이번 겨울 첫눈을 나는 순수하게 웃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눈사태

▲ 어머나 X발...


2008/07/05 21:03 2008/07/0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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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yangii 2008/07/05 22:51 댓글수정 또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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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년도는 날도 따뜻하고, 눈도 정말 안왔더랬지...
    군대에서 비오고 눈오는건 왜 죄다 주말일까 한탄한 기억이 떠오르는구나...=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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